손목이냐 사타구니냐, 시술 접근 경로가 다른 이유
시술 설명을 들으실 때 "손목으로 할게요" 또는 "사타구니로 들어갑니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지나가지만, 이 선택이 시술 후 몇 시간을 어떻게 보내실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조영실에서는 이 결정을 꽤 신중하게 합니다.
왜 동맥으로 들어가나
심장 혈관을 보려면 심장까지 관을 올려야 합니다. 심장에서 나오는 대동맥을 거꾸로 타고 올라가야 하니, 출발점은 동맥이어야 합니다. 팔이든 다리든 피부 가까이에서 만질 수 있고 굵기가 충분한 동맥이 필요한데, 그 조건을 만족하는 곳이 손목의 요골동맥과 사타구니의 대퇴동맥입니다.
참고로 부정맥 시술은 심장의 오른쪽 방으로 가면 되기 때문에 정맥을 씁니다. 그래서 지혈 부담이 덜합니다.
손목(요골동맥) — 요즘의 기본 선택
지난 10여 년 사이 조영실 풍경이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이 이것입니다. 예전엔 사타구니가 기본이었는데, 지금은 손목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 출혈 합병증이 적습니다. 손목은 뼈 위에 얹혀 있어 누르면 확실히 눌립니다. 여러 연구에서 출혈 관련 문제가 적게 보고되어 널리 쓰이게 됐습니다.
- 바로 앉고 걸을 수 있습니다. 시술 끝나고 화장실에 스스로 다녀오실 수 있다는 것이 실제로 큰 차이입니다.
- 입원 기간이 짧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손목에 압박 밴드를 감고 몇 시간에 걸쳐 서서히 압력을 뺍니다. 이 동안 손이 저리거나 부으면 바로 말씀하셔야 합니다.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혈관이 가늘어 경련(스팸)이 잘 생깁니다. 관이 지나갈 때 팔이 뻐근하거나 조이는 느낌이 들 수 있는데, 이럴 땐 혈관을 이완시키는 약을 넣습니다. 참지 마시고 말씀해 주세요.
사타구니(대퇴동맥) — 여전히 필요한 경로
손목이 기본이 됐다고 해서 사타구니가 밀려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꼭 필요한 상황이 분명히 있습니다.
- 굵은 장비가 들어가야 할 때 — TEVAR·EVAR 같은 스텐트그라프트, TAVI, 심장 보조장치 삽입은 손목 혈관으로는 불가능합니다.
- 손목 혈관이 가늘거나 이미 쓴 적이 있을 때 — 반복 시술로 막혔거나 굴곡이 심한 경우
- 복잡한 병변 — CTO처럼 강한 지지력이 필요한 시술에서 사타구니가 유리한 경우가 있습니다.
- 응급 상황에서 접근이 빠를 때
- 다리 혈관 시술 — 애초에 다리로 내려가야 하는 말초혈관 시술은 대부분 사타구니로 접근합니다.
대신 시술 후가 다릅니다. 다리를 펴고 누워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몇 시간 동안 굽히지 말라는 안내를 받으실 텐데, 답답하다고 무릎을 세우거나 몸을 돌리시면 그 자리에서 출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조영실에서 지혈까지 잘 끝냈는데 병실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대개 여기서 나옵니다.
그 밖의 경로
손목도 사타구니도 어려운 경우, 팔꿈치 안쪽 상완동맥이나 손등 쪽 원위 요골동맥(스너프박스)을 쓰기도 합니다. 손등 접근은 시술 후 손목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선호하는 곳도 있습니다.
시술 후 주의할 점
손목으로 하셨다면 — 압박 밴드가 있는 동안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여 주세요. 손이 하얗게 되거나 심하게 저리고 차가워지면 즉시 알리셔야 합니다. 밴드를 푼 뒤에도 며칠간은 그 손으로 무거운 것을 들거나 짚고 일어서지 마세요.
사타구니로 하셨다면 — 안내받은 시간 동안 다리를 펴고 누워 계세요. 기침이나 재채기가 나올 때는 손으로 그 부위를 지그시 눌러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퇴원 후에도 며칠은 무거운 것 들기, 쪼그려 앉기, 격한 운동을 피하세요.
어느 길로 들어갈지는 편의가 아니라 안전과 필요로 정합니다. 손목이 안 된다는 말은 나쁜 소식이 아니라, 더 알맞은 길을 골랐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