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검사와 고주파절제술, 부정맥의 원인을 찾아 끊어내는 시술
부정맥 환자분들이 가장 답답해하시는 것은 "병원에만 오면 멀쩡하다"는 점입니다. 집에서는 심장이 튀어나올 듯 뛰었는데, 막상 심전도를 찍으면 정상이죠. EP검사는 그 답답함을 해결하는 검사입니다. 증상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대신, 조영실 안에서 안전하게 재현해내는 것입니다.
심장은 전기로 움직입니다
심장이 뛰는 것은 근육이 알아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전기 신호가 정해진 길을 따라 흐르기 때문입니다. 심방 위쪽 동결절에서 신호가 출발해 심방 전체로 퍼지고, 방실결절을 거쳐 심실로 내려가면서 한 번의 박동이 완성됩니다.
부정맥은 이 전기 회로에 문제가 생긴 상태입니다. 신호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거나, 있어서는 안 될 지름길(부전도로)이 있어 신호가 뱅글뱅글 돌거나, 흉터 조직 주변을 맴돌면서 빠른 박동을 만들어냅니다.
EP검사(전기생리학검사)란
EP검사는 심장 안에 전극이 달린 가느다란 관 여러 개를 넣어, 심장 내부의 전기 신호를 직접 기록하는 검사입니다. 몸 밖에서 붙이는 심전도가 건물 밖에서 소리를 듣는 것이라면, EP검사는 각 방에 마이크를 놓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 검사로 알아내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 어떤 종류의 부정맥인가 — 발작성 상심실성빈맥인지, 심방조동인지, 심실빈맥인지
- 어디서 시작되는가 — 문제가 되는 자리의 정확한 위치
- 치료가 가능한 구조인가 — 절제로 끊어낼 수 있는 회로인지
고주파절제술(RFCA)은 무엇을 하나
원인 부위를 찾았다면, 그 자리를 아주 좁은 범위만 열로 지져서 전기가 통하지 않게 만듭니다. 이것이 고주파절제술입니다. 문제가 되는 전선 한 가닥을 끊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지지는 부위는 대개 몇 밀리미터 단위이고, 심장 근육 전체 기능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로 진행합니다. 열 대신 냉동으로 조직을 얼려 차단하는 방법(냉각절제술)도 있고, 최근에는 전기장을 이용해 심장 조직만 선택적으로 처리하는 방식도 쓰이고 있습니다. 어떤 방법을 쓸지는 부정맥 종류와 위치에 따라 정합니다.
시술 당일 과정
1. 준비 — 부정맥 약을 며칠 전부터 중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검사 중 부정맥이 안 나타나면 곤란하니까요). 언제부터 끊을지는 반드시 안내받은 대로 하세요. 금식하고, 심방세동 시술이라면 미리 심장 초음파로 심방 안에 혈전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2. 접근 — 대개 양쪽 사타구니 정맥을 통해 관을 넣습니다. 동맥이 아니라 정맥이라 지혈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입니다. 부정맥 종류에 따라 목이나 쇄골 아래 정맥을 함께 쓰기도 합니다.
3. 전극 배치 — X선 화면을 보면서 심장 안 여러 위치에 전극 카테터를 놓습니다. 심방세동처럼 왼쪽 심방을 다뤄야 하면, 심방 사이 벽을 살짝 통과해서 넘어가는 과정(중격천자)이 추가됩니다.
4. 지도 만들기 — 요즘은 3차원 매핑 장비를 씁니다. 카테터를 움직이면 화면에 심장 내부 모양과 전기 신호 분포가 색깔로 그려집니다. 빨간색·파란색으로 표시된 심장 그림을 보신 적 있다면 그게 이것입니다. 이 장비 덕분에 X선 촬영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된 것도 큰 변화입니다.
5. 절제 — 목표 지점에 카테터 끝을 대고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이때 가슴이 뜨겁거나 뻐근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위치에 따라 통증 정도가 다르고, 진정제나 진통제를 조절해 드립니다. 참지 말고 말씀하세요.
6. 확인 — 절제 후 다시 자극을 줘서 부정맥이 더 이상 유발되지 않는지 확인합니다. 이 확인 과정까지 끝나야 시술이 마무리됩니다. 전체 시간은 부정맥 종류에 따라 크게 달라, 단순한 경우 두 시간 안팎, 심방세동처럼 복잡한 경우 서너 시간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어떤 부정맥에 하나요
- 발작성 상심실성빈맥(PSVT) — 갑자기 시작되고 갑자기 멈추는 빠른 두근거림. 절제술의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대상입니다.
- WPW증후군 — 심방과 심실 사이에 지름길이 있는 경우. 그 지름길을 끊어냅니다.
- 심방조동 — 심방이 일정한 회로를 도는 부정맥. 회로의 좁은 길목을 차단합니다.
- 심방세동 — 폐정맥 주변에서 시작되는 신호가 원인인 경우가 많아, 폐정맥 입구를 빙 둘러 전기적으로 격리하는 방식이 널리 쓰입니다.
- 심실기외수축·심실빈맥 — 증상이 심하거나 심장 기능에 영향을 주는 경우 시행합니다.
시술 후와 재발에 대해
정맥 접근이라 지혈 후 몇 시간 누워 계시면 되고, 하루 이틀 안에 퇴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타구니에 멍이 드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여기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재발입니다. 부정맥 종류에 따라 결과가 상당히 다릅니다. 상심실성빈맥처럼 회로가 명확한 부정맥은 한 번의 시술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심방세동은 여러 번 시술이 필요한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심방 조직 전체가 변해가는 병이라 한 지점을 끊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시술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병의 성질입니다.
또 시술 후 몇 주에서 두세 달 정도는 지진 자리가 아무는 과정에서 두근거림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증상만으로 실패라고 판단하지 않고 경과를 지켜봅니다.
항응고제 복용 여부도 중요합니다. 심방세동으로 시술받으셨다면 시술 후에도 일정 기간 항응고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정맥이 없어졌으니 약도 끊어도 되겠지"라고 스스로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뇌졸중 위험은 부정맥이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개인의 위험도에 따라 남아 있을 수 있어, 중단 여부는 반드시 의료진이 판단합니다. 본인의 위험도가 궁금하시면 심방세동 뇌졸중 위험도 계산기로 대략적인 감을 잡아보실 수 있습니다.
부정맥 시술은 심장을 고치는 게 아니라, 잘못 연결된 전선 한 가닥을 찾아 끊는 일입니다. 그 한 가닥을 찾기 위해 조영실에서 몇 시간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