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맥류 검진, 누가 언제 받아보면 좋을까
조영실에서 대동맥류 시술을 준비하다 보면, 환자분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아픈 데도 없었는데요." 맞습니다. 대동맥류는 커지는 동안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병은 증상을 기다릴 게 아니라 찾으러 가야 하는 병입니다.
왜 검진이 의미가 있나
복부대동맥류는 조건이 특이합니다. 터지기 전에 발견하면 계획된 시술이나 수술로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데, 터진 뒤에 발견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결과의 차이가 이렇게 극적인 병은 흔치 않습니다.
게다가 확인하는 방법이 간단합니다. 복부 초음파는 방사선도 조영제도 쓰지 않고, 누워서 배에 젤을 바르고 10~15분이면 끝납니다. 부담이 거의 없는 검사로 큰 위험을 걸러낼 수 있다는 점이 이 검진의 핵심입니다.
어떤 사람이 받아보면 좋을까
모든 사람이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 나라의 권고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대상은 이렇습니다.
- 65세 이상 남성 중 흡연 이력이 있는 경우 — 가장 널리 언급되는 대상입니다. 현재 피우지 않더라도 과거에 오래 피웠다면 포함됩니다
- 가족력이 있는 경우 — 부모나 형제자매 중 대동맥류나 대동맥박리가 있었다면, 나이나 성별과 무관하게 상의해 보실 만합니다
- 이미 다른 부위 동맥경화가 있는 경우 — 관상동맥질환, 말초동맥질환, 경동맥협착을 진단받았다면 대동맥도 함께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 유전성 결합조직질환이 있거나 의심되는 경우
- 고혈압을 오래 앓고 조절이 잘 안 되는 경우
여성은 남성보다 발생률이 낮아 일괄 검진 대상으로는 잘 언급되지 않지만, 흡연 이력과 가족력이 있다면 개별적으로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발견됐다면 — 크기가 기준입니다
복부대동맥의 정상 지름은 대개 2cm 안팎입니다. 3cm를 넘으면 동맥류로 부르지만, 그렇다고 바로 치료하지는 않습니다. 터질 위험이 시술 위험보다 커지는 시점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발견 후에는 정기적으로 크기를 재는 것이 관리의 전부가 됩니다. 크기가 작을수록 간격이 길고, 클수록 자주 봅니다. 구체적인 주기는 크기와 진행 속도, 개인의 상태에 따라 담당 의료진이 정합니다.
일반적으로 치료를 고려하는 시점은 지름이 일정 기준(남성은 대략 5.5cm, 여성은 그보다 작은 기준이 언급됩니다)을 넘을 때, 또는 짧은 기간에 빠르게 커질 때, 또는 증상이 생겼을 때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할 수 있는 것
"수술할 정도는 아니니 지켜봅시다"는 말을 들으면 허탈해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이 오히려 할 일이 많은 시기입니다.
- 금연 — 대동맥류가 커지는 속도와 가장 강하게 연관된 요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에 금연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개입입니다
- 혈압 조절 — 대동맥 벽에 걸리는 압력을 낮게 유지합니다. 처방받은 약을 거르지 마세요
- 콜레스테롤 관리 — 동맥경화 전반의 진행을 늦춥니다
- 정기 검사 지키기 —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 증상이 없어도 다음 검사 날짜를 반드시 지켜주세요
- 운동 — 걷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대체로 권장됩니다. 다만 숨을 참고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운동은 압력을 급격히 올릴 수 있어 상의가 필요합니다
제가 조영실에서 자주 보는 아쉬운 장면
몇 년 전 검진에서 "대동맥이 좀 넓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픈 데가 없어서 다음 검사를 안 받으신 경우입니다. 그러다 응급으로 오시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반대로 잘 관리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매년 초음파를 받으시다가 기준에 도달했을 때 계획된 날짜에 EVAR를 받고 편안하게 퇴원하시는 경우죠. 같은 병인데 경로가 이렇게 다릅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검사 일정 하나입니다.
대동맥류는 증상으로 알려주는 병이 아니라 검사로 알려주는 병입니다. 그래서 검진 한 번이 치료의 시작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