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T(심장재동기화치료), 박자가 어긋난 심장을 맞춰주는 장치
심부전 치료라고 하면 보통 약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약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심장이 박자를 놓치는 것입니다. 좌우 심실이 동시에 수축해야 하는데 한쪽이 늦게 따라오면, 아무리 힘이 있어도 효율이 떨어집니다. CRT는 그 박자를 맞춰주는 치료입니다.
박자가 어긋난다는 것
정상 심장에서는 전기 신호가 심실 전체에 거의 동시에 퍼집니다. 그래서 심실 벽 전체가 한꺼번에 조여지며 피를 밀어냅니다.
그런데 심장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전선 중 왼쪽 갈래가 손상되면(좌각차단) 어떻게 될까요. 오른쪽 심실은 제때 수축하는데 왼쪽 심실은 한 박자 늦게 수축합니다. 심지어 왼쪽 심실 안에서도 부위마다 시간차가 생깁니다.
이러면 문제가 됩니다. 한쪽 벽이 수축할 때 반대쪽 벽은 아직 늘어져 있으니, 밀어낸 피가 그쪽으로 밀려갔다가 뒤늦게 다시 밀려나옵니다. 힘이 낭비되는 것이죠. 노를 젓는데 좌우가 엇박자로 젓는 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힘은 쓰는데 배는 잘 안 나갑니다.
CRT가 하는 일
CRT(Cardiac Resynchronization Therapy, 심장재동기화치료)는 전극선을 하나 더 넣어 왼쪽 심실을 직접 자극합니다.
보통 페이스메이커는 전극선이 심방과 우심실, 두 개입니다. CRT는 여기에 좌심실용 전극선을 추가합니다. 그러면 늦게 수축하던 왼쪽 심실에 미리 신호를 보내, 오른쪽과 같은 타이밍에 수축하도록 맞출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효과가 기대되나
모든 심부전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박자가 어긋나 있는 경우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건을 봅니다.
- 심장의 펌프 기능이 떨어져 있을 것 — 심장 초음파에서 좌심실 박출률이 낮게 확인되는 경우
- 약물치료를 충분히 했는데도 증상이 남을 것 — CRT는 약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얹는 치료입니다
- 심전도에서 QRS 폭이 넓을 것 — 이게 핵심 지표입니다. QRS는 심실이 수축하는 구간인데, 이게 넓다는 것은 신호가 퍼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입니다. 즉 박자가 어긋나 있다는 증거입니다
- 좌각차단 형태일 것 — 이 형태에서 효과가 가장 뚜렷하게 보고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QRS가 좁은 심부전 환자에게는 CRT가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적응증 판단이 중요합니다.
기대할 수 있는 변화
잘 맞는 환자에서는 변화가 꽤 뚜렷합니다. 숨찬 증상이 줄고, 걸을 수 있는 거리가 늘고, 심장 초음파에서 펌프 기능 수치가 좋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 연구에서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과 사망 위험이 줄었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다만 모두가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수는 효과를 보지만, 일부는 뚜렷한 변화가 없습니다. 이를 '무반응'이라고 부르는데, 원인은 전극 위치, 기기 설정, 심장 근육의 손상 정도 등 여러 가지입니다. 그래서 시술 후에도 설정을 조정하며 최적화하는 과정이 따라옵니다.
CRT-P와 CRT-D
두 종류가 있습니다.
- CRT-P — 박자를 맞추는 기능만 있는 것
- CRT-D — 여기에 제세동기(ICD) 기능이 더해진 것
심부전 환자는 위험한 부정맥 위험도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CRT-D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나이, 전신 상태, 기대여명, 본인의 선택에 따라 CRT-P로 가기도 합니다. 충격이 주는 부담도 함께 고려하는 결정입니다.
시술 후 관리에서 특히 중요한 것
기기가 제 몫을 하려면 거의 모든 박동을 CRT가 이끌어야 합니다. 그런데 심방세동이 생겨 심실이 제멋대로 빠르게 뛰면, 기기가 끼어들 틈이 없어져 효과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CRT 환자에서는 심박수 조절과 심방세동 관리가 특히 중요합니다. 정기 점검에서 "CRT가 몇 퍼센트나 작동했는지"를 확인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나머지 관리는 페이스메이커와 같습니다. 시술 직후 팔 사용 제한, 상처 관리, MRI와 전자기기 주의사항, 정기 점검.
심부전 치료에서 CRT는 심장을 더 세게 뛰게 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이미 있는 힘을 낭비하지 않게 박자를 맞춰주는 장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