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심증후군, 마음이 심장을 멈추게 할 때
조영실에서 잊기 어려운 장면이 있습니다. 심근경색이라고 응급으로 내려온 분의 관상동맥을 열어보니 혈관이 너무나 깨끗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심장은 한쪽이 거의 움직이지 않습니다. 보호자에게 며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면, 대개 답이 나옵니다. 가까운 사람을 잃으셨습니다.
문어 항아리를 닮은 심장
이 병의 정식 이름은 타코츠보 심근증입니다. '타코츠보'는 일본에서 문어를 잡을 때 쓰는 항아리를 뜻합니다. 심장 초음파나 조영 영상에서 이 병을 보면, 심장의 아래쪽 끝이 크게 부풀고 입구는 좁아진 모양이 나옵니다. 그 모양이 문어 항아리를 닮아서 붙은 이름입니다.
우리말로는 상심증후군이라고도 부릅니다. 말 그대로 마음이 상해서 생기는 심장병이라는 뜻입니다. 의학 용어가 이렇게 문학적인 경우는 드뭅니다.
왜 혈관이 깨끗한데 심장이 멈추나
정확한 기전은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카테콜아민 폭발입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은 아드레날린 계열 호르몬을 대량으로 내보냅니다. 원래는 위기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반응입니다. 그런데 이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쏟아지면 심장 근육 자체가 그 자극에 마비됩니다. 특히 심장 아래쪽 끝부분에 이 호르몬에 반응하는 수용체가 많다고 알려져 있어, 그 부위가 유독 심하게 멈춥니다.
즉 혈관이 막혀서 근육이 죽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에 압도되어 근육이 일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영술에서 혈관은 깨끗하게 보입니다.
어떤 일이 방아쇠가 되나
슬픔만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의 급격한 부하가 모두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 배우자·자녀의 사망, 이별, 재난 경험 — 가장 전형적인 계기입니다.
- 심한 다툼, 큰 공포, 대중 앞에서의 극도의 긴장
- 교통사고, 큰 수술, 중증 감염, 천식 발작 같은 신체적 스트레스
- 드물게는 기쁜 일도 계기가 됩니다. 복권 당첨이나 오랜 재회 뒤에 발생한 사례들이 보고되어 있습니다.
이 병은 폐경 이후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합니다. 에스트로겐이 줄면서 혈관과 심근이 스트레스 호르몬에 더 취약해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부분 회복됩니다 — 그러나 급성기는 위험합니다
이 병의 가장 큰 특징은 되돌아온다는 점입니다. 심근이 죽은 것이 아니라 기능을 잃은 상태이므로, 보통 몇 주에서 두 달 안에 심장 기능이 원래대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회복되기 전 급성기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심장 기능이 갑자기 떨어진 상태이므로 이런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 급성 심부전과 폐부종 — 숨이 몹시 차오릅니다.
- 심각한 부정맥
- 심장 안에 혈전이 생겨 뇌졸중으로 이어질 위험
- 드물게 심장 파열
그래서 진단이 붙었다고 해서 바로 퇴원하지 않고, 중환자실이나 병동에서 며칠 지켜봅니다. "혈관은 깨끗하다"는 설명과 "입원해야 한다"는 설명이 동시에 나오는 이유입니다.
치료와 회복
뚫을 혈관이 없으니 스텐트는 쓰지 않습니다. 치료는 심장이 회복될 동안 버티게 하는 것입니다.
- 심부전 약(이뇨제, 베타차단제, ACE억제제·ARB 계열)으로 심장의 부담을 줄입니다.
- 심장 안 혈전 위험이 있으면 항응고제를 씁니다.
- 심장 기능이 크게 떨어지면 기계적 순환보조가 필요한 경우도 드물게 있습니다.
- 회복이 확인되면 약을 서서히 줄여갑니다.
- 재발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퇴원 후 추적 초음파를 봅니다.
그리고 마음에 대한 치료
이 병에서만큼은 "스트레스 관리하세요"가 형식적인 조언이 아닙니다. 스트레스가 병의 직접 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별이나 큰 상실 뒤에 발생한 경우, 애도 과정을 혼자 버티게 두면 회복이 더뎌집니다. 가족의 동행, 필요하면 정신건강 진료나 상담을 함께 받는 것이 심장 회복에도 도움이 됩니다. 조영실에서 만난 분들 중에도, 퇴원 후 가족이 옆에 머물러준 분들의 회복이 눈에 띄게 좋았습니다.
심장은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마음에 반응하는 장기입니다. 가슴이 무너진다는 말은 비유가 아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