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성 상심실성빈맥, 갑자기 시작하고 갑자기 멈추는 두근거림
부정맥 중에 유난히 설명이 명쾌한 것이 있습니다. 발작성 상심실성빈맥(PSVT)입니다. 원인이 분명하고, 시술로 사실상 해결되는 경우가 많은 부정맥이거든요. 조영실에서 고주파절제술을 마치고 "이제 안 그럴 겁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황입니다.
증상이 아주 특징적입니다
이 부정맥은 이야기만 들어도 짐작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스위치를 켠 것처럼 갑자기 시작됩니다. 서서히 빨라지는 게 아닙니다
- 심박수가 분당 150~250회까지 올라갑니다. 세기 어려울 정도로 빠릅니다
- 규칙적입니다. 심방세동처럼 들쭉날쭉하지 않고 일정한 박자로 빠릅니다
- 갑자기 멈춥니다. 역시 스위치를 끈 것처럼
- 몇 분에서 몇 시간까지 지속되고, 끝난 뒤 소변이 자주 마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럽고, 목이나 가슴에서 쿵쿵거리는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운동 중이 아니라 가만히 있을 때 갑자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놀라서 응급실에 가면 그새 멈춰서 정상으로 나오는 일이 흔합니다.
왜 생기나 — 회로가 도는 것
정상 심장은 신호가 한 방향으로 흐르고 끝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심장 안에 고리 모양의 회로가 만들어질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흔한 두 가지는 이렇습니다.
1. 방실결절 회귀성 빈맥(AVNRT) — 심방과 심실 사이의 관문인 방실결절 부위에 속도가 다른 두 갈래 길이 있는 경우입니다. 평소에는 문제없다가, 특정 타이밍에 조기수축이 하나 끼어들면 신호가 한쪽 길로 내려갔다가 다른 길로 되올라오면서 뱅글뱅글 도는 회로가 만들어집니다. 한 바퀴 돌 때마다 심실이 한 번 뛰니, 아주 빠른 맥박이 됩니다.
2. 방실회귀성 빈맥(AVRT) — 심방과 심실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될 지름길이 선천적으로 있는 경우입니다. 이 지름길이 심전도에 흔적을 남기면 WPW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정상 통로와 지름길이 고리를 만들어 신호가 순환합니다.
발작이 왔을 때 — 미주신경 자극법
이 부정맥은 회로가 방실결절을 거치는 경우가 많아, 방실결절의 전도를 잠깐 늦추면 회로가 끊어지면서 멈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미주신경을 자극하는 방법을 씁니다.
- 발살바법 —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배에 힘을 주고 참습니다(대변볼 때처럼). 10~15초. 주사기 밀대를 불어내는 식으로 하기도 합니다
- 변형 발살바법 — 앉아서 힘을 준 뒤, 곧바로 누우면서 다리를 들어 올리는 방법. 그냥 하는 것보다 성공률이 높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 차가운 물 — 얼굴을 찬물에 담그거나 얼음주머니를 얼굴에 대는 방법
병원에서는 어떻게 하나
응급실에서는 정맥으로 약을 넣어 회로를 끊습니다. 아데노신이라는 약이 흔히 쓰이는데, 작용 시간이 아주 짧습니다. 이 약이 들어가면 몇 초간 가슴이 확 답답하고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어 미리 설명을 드립니다. 곧 사라집니다. 상태가 불안정하면 전기 충격으로 리듬을 되돌리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의 심전도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두근거리는 동안 찍은 심전도가 있으면 진단이 훨씬 쉬워집니다. 그래서 증상이 있을 때 병원에 가시는 것이 좋고, 자주 놓친다면 이벤트 기록기를 씁니다.
근본적인 해결 — 고주파절제술
여기가 이 부정맥의 좋은 소식입니다. 회로가 명확하기 때문에, 전기생리학검사로 그 회로를 찾아내 한 지점을 차단하면 회로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이 부정맥에 대한 절제술은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성공하면 평생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정맥 치료 중에 '완치'라는 표현에 가장 가까운 영역입니다.
시술을 언제 하느냐는 발작 빈도와 증상 정도,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볍게 지나가면 약이나 미주신경 자극법으로 대처하기도 하고, 자주 반복되거나 실신을 동반하면 적극적으로 시술을 권합니다. WPW증후군에서 특정 소견이 있는 경우에는 증상이 심하지 않아도 시술을 권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부정맥은 관리하는 병입니다. 이 부정맥은 드물게도, 끊어낼 수 있는 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