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심근경색은 다르게 옵니다
조영실에 응급으로 내려오는 환자를 보면 남성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도착이 늦은 쪽은 여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증상이 시작된 시각을 물으면 "어제 저녁부터 좀 그랬는데 체한 줄 알았다"고 하십니다. 왜 늦어지는지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코끼리가 가슴을 누른다'는 설명의 함정
심근경색의 전형적 증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가슴 중앙을 짓누르는 강한 통증, 왼팔로 퍼지는 느낌, 식은땀입니다. 이 설명은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이 표현은 주로 남성 환자에서 관찰된 양상을 기준으로 퍼졌습니다.
여성에서는 이런 양상이 덜 뚜렷하고, 대신 다른 증상이 앞서는 경우가 흔합니다.
- 이상하게 심한 피로 — 며칠 전부터 계단 한 층이 힘들어집니다. 가장 자주 보고되는 전조 증상입니다.
- 숨이 차는 느낌 — 통증 없이 숨만 찬 경우도 있습니다.
- 소화가 안 되는 느낌, 메스꺼움, 구토 — 체했다고 생각해 소화제를 먹게 됩니다.
- 등·목·턱·어깨 사이의 통증 — 가슴이 아니라 등 가운데가 아픈 경우가 있습니다.
- 식은땀, 어지럼, 불안감
- 잠을 자다 깨는 불편감
이런 증상들은 갱년기, 위염, 스트레스, 근육통으로 설명해 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폐경이 혈관에 남기는 변화
여성은 같은 나이대 남성보다 심혈관질환이 대체로 늦게 나타납니다. 에스트로겐이 혈관 내막의 기능을 돕고 지질 균형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으로 설명됩니다.
그런데 폐경 이후 이 보호가 줄어들면서 변화가 빠르게 옵니다.
- LDL과 중성지방이 오르고 HDL이 내려가는 방향으로 지질이 재배치됩니다.
- 혈압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 복부 지방이 늘고 혈당 조절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40대 후반~50대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가 갑자기 달라졌다면, 관리를 시작하기에 가장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때를 놓치면 60대 이후 위험이 남성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갑니다.
여성에게만 있는 위험인자들
진료지침에서 여성 특유의 위험 요인으로 꼽는 항목들이 있습니다. 본인 이력에 해당하는지 확인해 보세요.
- 임신성 고혈압, 전자간증(임신중독증) — 출산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후 고혈압과 심혈관질환 위험이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임신성 당뇨 — 이후 2형 당뇨 위험이 높습니다.
- 조기 폐경(45세 이전) — 보호 기간이 짧아집니다.
- 다낭성난소증후군 — 인슐린 저항성과 연관됩니다.
- 류마티스관절염·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 — 여성에게 흔하고, 만성 염증이 혈관에 작용합니다.
- 유방암 치료 이력 — 일부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가 심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추적이 필요합니다.
이런 이력은 산부인과 기록에만 남고 심장 진료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료 때 먼저 말해주시면 위험도 평가가 달라집니다.
검사에서도 놓치기 쉽습니다
여성의 관상동맥은 평균적으로 가늘고, 병변이 한 군데 뭉치지 않고 퍼지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영 사진에서 "좁은 곳이 없다"고 읽히기 쉽습니다.
또 큰 혈관이 아니라 미세혈관이나 혈관 경련이 원인인 경우가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흔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미세혈관 협심증 글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 밖에 동맥경화 없이 혈관 벽이 찢어지며 막히는 자발성 관상동맥박리도 젊은 여성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보고됩니다.
무엇을 하면 되나
- 폐경 전후로 혈압·지질·혈당을 정기적으로 확인하세요. 40대 후반의 기준선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임신 합병증·조기 폐경·자가면역질환 이력을 진료 때 반드시 언급하세요.
- 증상이 애매해도 "평소와 다르다"면 검사받는 쪽을 택하세요. 응급실에 갔다가 아니라고 확인받는 것이, 집에서 참는 것보다 언제나 낫습니다.
- 가족에게도 알려주세요. 여성 심근경색 증상은 본인보다 가족이 먼저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의 심장은 조용히 말합니다. 크게 외치지 않으니, 작은 변화를 듣는 쪽이 살아남습니다.